자연의 원리

차바퀴에 도로가 해지도록

함미호 2009. 1. 7. 10:54

작년 한해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틀니를 한 일이다.

갉강니로 5년여를 지내다가 작심하고 남은 윗니 두대를 빼고 아랫니 윗니 완전한 틀니를 했다.

처음엔 밖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니 입안이 하나 가득하더니 씹을 때마다 중구난방으로 들썩 거려 잇몸에 통증이 온다.들리는 소문으론 잇몸이 틀니에 밤 알 차듯이 꽉 차이려면 상처나고 아프고 아물고 그것이 굳고 하는 고통을 참아야 한단다.

"먹는 다는 것이 고통이고, 씹는 다는 것이 아픔이다."

다른 이들은 70넘어 찻아 올 고통을 40넘어 감수하는 것이니 미리하는 것이다.일찍 시집가서 일찍 애낳고 살림하듯이....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여긴다.

어쩌면 그동안 깨물지 못했던 과일이나 김치 나아가서 고기나 무우까지 조금씩 먹는 육신을 재발견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현대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유용한 것도 있구나 여긴다.옛날엔 이빨 빠지면 빠진대로 살았으니 당연하다 여기고 그냥 살았다.그런데 서양인은 이빨이 빠지면 당연히 의치를 해야지 생각했으니 무엇이 당연지사인 것인가?

안되면 되게하라,불가능은 없다 가 아니겠는가?...결국 과학이란 눈속임에 불과한 도구이지만 유용하고 편리는 하다.

앞일이 어찌 될 것인가는 절대 예측하지 않는다.

단지 흐르는 생의 만경 창파위에 나 자신의 돛단배를 띄워 놓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면 치는 대로 흘러 갈 뿐,

영화를 처음 보면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알지 못해 조마 조마 하지만

다시 보면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맘놓고 본다.

하지만 알지 못하고 볼 때나 알고 볼 때나 시간은 똑같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다 보면 끝이 없는 길이 없고

끝이 있는 길도 한 발 한 발 내딛지 않으면 도달할 수가 없다.

나무는 완만하고 천천이 자라나는 것이요

불은 밝고 환하게 불밝히는 것이요

흙은 끈적하고 후덥지근하게 굳는 것이요

쇠는 냉철하고 싸늘하게 단단해지는 것이요

물은 쉬임 없이 흐르고 흘러 연이어 이어지는 것이다.

나무는 자라나는 광전자가 모인 것이요

불은 타버리는 광전자가 모인 것이요

흙은 쌓이는 광전자가 모인 것이요

쇠는 단단한 광전자가 모인 것이요

물은 연한 광전자가 모인 것이니 에너지요 만물의 현상이요 형상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므로

흙의 고정됨은 인체의 비위장에서 나오고

쇠의 견고함은 인체의 폐대장에서 나오고

물의 유연함은 인체의 신방광에서 나오고

나무의 부드러움은 인체의 간담에서 나오고

불의 뜨거움은 인체의 심소장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나"를

산처럼 살고 싶으면 단맛을 즐겨 먹으면 되고

쇠처럼 살고 싶으면 매운맛을 즐겨 먹으면 되고

물처럼 살고 싶으면 짠맛을 즐겨 먹으면 되고

나무처럼 살고 싶으면 신맛을 즐겨 먹으면 되고

불처럼 살고 싶으면 쓴맛을 즐겨 먹으면 된다.

인체는 물질이므로 지구상에 물질을 파먹고 자라 난다.이것이 十(십)의 세계요 卍(만)의 세계요 우리들이 펼쳐 놓은 세상이다.

완전한 인간은 十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다.그럴려면 자연의 원리를

"차바퀴에 도로가 해지도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