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회담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수립은 1919년 4월13일이니 3.1운동이 끝난 직후요,기미년이다.
쾌거요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씨앗은 잉태 되었던 것이다.
뱃속에 아기를 두고 먼저간 임의 형국이라(유복자)
1910년에 한일 합방이 되니 백성은 깜깜한 밤중에 길을 잃어 방향을 찻을 수 없었다. 망망대해에서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이런 와중에 상해 임시정부는 불빛이요 나침반이요 등대였던 것이다.
이 때도 조선의 땅(임시 정부)은 남한 북한 간도까지 였다.
비록 왜인이 대륙을 침략하고자 혈안이 되어 만주 철도 부설권을 핑계로 간도를 내주었다 해도 영토와 백성이 어디 가랴.
1945년에 일본은 패망했지만
소련에 속아서 공산주의로 북이서고
미국을 믿어서 자유주의로 남이서고
간도는 중국으로 넘어가니 승전국끼리 사이 좋게 나눠먹기 한 것이다.
우리의 의사와는 전연 상관 없이 동족이 하루 아침에 갈가리 찢기었다.
나라의 자주권이 없으니 강제로 삼분 천하가 된 것이다.
6.25가 터지자 동족끼리 죽이고 죽는 피를 부르고 끝까지 추격하여 압록.두만강에 이르니 인해전술로 또 중국이 우리 동족을 총알 받이로 내 몰았다.아아! 진실로 한 민족이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출 뻔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 하사 남한 만이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죽을 순 없다,맨주먹 붉은피로 일어서서 경제를 부흥시켰고 오늘에 이르러 3분지 1의 땅에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이뤄냈다.
어찌 한시라도 동족 상잔의 아픔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인제는 말할 수 있다.그때의 회담은 잘못된 것이라고
남한은 미국에게 따지고
북한은 소련에게 따지고
간도는 중국에게 따져야 한다.
왜 우리를 갈라 놓았냐고?
그래서 되돌리지 못한 다면 속죄하는 뜻에서 철로를 잇어 달라고,
왜 말 못하는가?
왜 꿀먹은 벙어리 행세만 하는가?
원구성도 못하는가?
만일 철로를 잇어준다면 하나된 한민족은 감사하며 세계인들에게 인류공영에 큰 사상을 낳아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6자 회담은 한민족이 하나되기 위한 회담인 것이다.